2021. 2. 27. 22:13ㆍ시베리아 횡단
다시 열차를 탑승한다.
이르쿠츠크는 처음 만난 날 따뜻하게 맞이했고
여길 떠날 때까지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은 달콤하다.
북적거리는 시장에서 들리는 러시아어는
향기를 불어일켜 나를 그곳으로 다시 이끈다.

열차 안에서는 뚝딱하면
하루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사라진다.
피곤했는지 어제 밤 저녁은 푹 잘 수 있었다.

검은 숲과 하얀 눈
그 속에 살아갈 동물들을 상상한다.

좌석에 매트리스를 깐다.
누워서 잘 때 조금 좁을 수도 있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열차 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내리고 또 올라탄다.
내 앞 좌석에도 사람들이 자주 바뀐다.

이번 모스크바까지는 4인석(1층, 2층 각 1명씩 좌석이 서로 마주보고 가는 형태)이다.

함께 탄 50대 중후반의 아저씨는 나랑 모스크바까지 동행한다.
가는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각자의 일상에 맞춰 시간을 보낸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제법 눈이 많이 온다.
눈을 쓰는 일은 러시아에서 일상이다.

힘들어서 지쳐 보이신다.

다시 열차는 출발한다.

쌓아 올린 목재 위로도 눈이 내렸다.

러시아에서는 목재와 지하자원이 매우 풍부하다.
축복받은 땅이기 때문에
여기 사람들은 아등바등살지 않아도 행복해 보인다.

이번 열차도 마찬가지로 정차역과 운행 시간표를 사진으로 찍어둔다.

자작나무와 소나무의 향연
춤추듯 눈 바람에 날린다.

바람이 불 때 움직이지 않는 나무는 죽은 나무라고 하던가.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튼튼한 나무도 부러지는 법이다.

숲 속을 걸어보고 싶다.

물론 위험한 일이다.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키가 큰 나무와 키가 작은 나무도
서로 공생한다.


다시 또 화장실에서 셀카를 찍는다.
궂이 화장실에서 셀카를 찍는 이유는 없다.

모처럼 파란 하늘이 보인다.
열차를 타면 동에서 서로 또는 서에서 동으로
기준 시간이 몇 번이나 바뀐다.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의 시간차는 무려 7시간이다.
모스크바는 서울 기준으로 6시간 늦다.
블라디보스톡은 서울 기준으로 1시간이 빠르다.

산들은 지평선으로 보일만큼 나지막하다.

맞은 편 아저씨는 과묵하시다.
늘 때마다 홍차를 드시고 과자를 챙겨드신다.

위 아래의 2인 좌석보다는
4명이서 타는 좌석이 더 편안하다.
물론 가격은 조금 더 비싸다.

열차 칸은 여러개가 있다.
반려동물이 탑승가능한 칸도 있고
흡연이 가능한 칸도 있다.

화장실과 가까운 열차 출입구 앞 좌석은 가장 저렴하다.

철제교각을 지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러시아 역사와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선로다.

유럽과 인접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문화, 역사, 경제의 중심지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땅은 워낙 넓어서 통치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또한 전략적으로 극동지방의 점령과 개발은 러시아의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였다.

횡단열차의 선로는 지금은 관광객들의 버킷리스트
내지 현지인들에게는 근거리를 이동하는 열차이지만
그 당시 이 열차의 선로를 만들기 위해서
수천명의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난코스도 있었다.
그 선로를 만들때 투입된 인부들 중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로로 러시아는
각종 물자와 인력을 운반하면서
각 거점에 공업 도시나 임업과 광업 도시도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선로의 역사를 알아가면서
이 선로는 러시아 사람들의 조상님께서
피와 땀으로 만든 길임을 알고
어쩌면 러시아로 이주하신 우리 선조님들께서도
이 선로 작업에 동원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과거 우리는 참으로 비극적인 역사를 겪었다.
그렇기에 이 횡단은 더 아팠고,
그 아픔 덕분에 여러 사람들이 지금은 즐길 수 있는 길이 되었다.

누구나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아픔은 수반한다.
그래서 그 뒤를 잇는 사람들은
결코 앞에서 묵묵히 걸어간 사람들의 노고를 잊지 않아야 한다.



해는 저문다.

불에 타듯
열정은 마지막 빛을 발한다.


어둑한 밤이다.
이곳의 교통량은 제법 된다.

아파트도 즐비하다.
여긴 아마도 매우 큰 도시인 것 같다.

깜빡 잠들고 일어나니 새벽이다.
새벽은 안개로 자욱하다.

해가 뜨기 전
하루가 시작되는 이 때가
나는 가장 좋다.
3일 준비하고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하기 - 16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가난한 여행자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푼다. 열차는 급할 것 없이 달리며 각 도시에서 온 탑승객들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준다. 나는 오로지 때가 되면 먹는 것만 준비하면 된
moon-times.tistory.com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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