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 27. 22:05ㆍ시베리아 횡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무엇이 나의 트라우마였는지 잊은채
바쁘게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꿈 같은 면허를 따고나서
나는 냉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상처를 입었다.
'공부만 하면 돼'에서 '이제는 먹고 살아야해'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마주한 세상은 낯설고
심지어 나를 속였다는 생각에 배신감도 느꼈다.
창창하게 펼져진 미래는 어디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정말로 감사했고 한편으로 죄송스러웠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은 날 더욱 힘들게 했다.
러시아 여행은 숨을 좀 쉬고 싶어서 떠났다.
다행히 춥고 얼어붙은 이곳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이르쿠츠크의 병원이다.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광고한다.
역시 병원도 영업이다.
거리를 그냥 돌아다닌다.
열차는 저녁 10시 30분경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아직 충분히 여유가 있다.
이곳 관광안내소이다.
문을 열지 않은 듯 하다.
이렇게 버스 광고판은
공연에 대한 안내정보가 붙어있다.
휘핑크림에 얹은 시나몬 느낌이다.
도시와 차들
케밥을 만드는 모습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찍어본다.
이곳은 가죽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장이다.
가죽시장이다.
그러고 보면 이르쿠츠크의 시장의 규모는 매우 큰 것 같다.
이르쿠츠크의 여행자 동상이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소개된 적 있다.
얼빠진 턱
멍한 눈
힘없이 늘어진 어깨가 딱 나다.
나는 이 동상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나의 모습 같기도 하고
카메라를 저렇게 들고 있으면 소매치기 당할 건데
왠지 어깨를 두드리며 정신차려 이 친구야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다시 마트로 왔다.
나는 이 마트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다시 열차에서 3일 동안 먹어야 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미리 점 찍어둔 음식을 쓱 담는다.
틱택은 내가 여행선물로 즐겨 준비하는 사탕이다.
지난 3일 동안 열차 안에서
배를 많이 곪았는가 보다.
본능적으로 장바구니를 2봉지 준비했다.
처음에는 아껴먹어야지 하던게
이제는 잘 먹어야지로 점점 바뀌는 것 같다.
호스텔의 뒷 마당, 주차장을 다시 찍는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왔다는 것을 계속 확인하려 하는 듯 하다.
한 대학교 풍경이다.
도서관이 인상적이다.
도로 위에는 트램과 자동차가 공존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저마다 운행 규칙이 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하늘에는 트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전선이 있고 도시를 더욱 이국적으로 보이게 한다.
전력이 끊기면 트램도 정지한다.
트램이 지나간다.
이르쿠츠크의 상징인 여우상이다.
고양이일지도?
치워진 눈은 블럭이 된다.
눈이 없는 러시아는 이제 상상할 수 없을 것 같다.
치울 수 없는 거대한 쓰레기가 된 것 같다.
가방을 매고
두 손에 잔뜩 음식을 들고 걸으니
이제 좀 앉고 싶다.
성당 안 마당으로 들어간다.
젠장 얼음으로 조각을 만들었다.
심지어 이쁘다.
다행인 것은 여행 내내 날씨가 좋았다는 것이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왔다는 결과만 보고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지나간다.
이르쿠츠크 인근에는 공항도 있다.
한국에서 이르쿠츠크까지 비행기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소소한 것들을 찍기 시작했다.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
여운이 남아서이다.
일단 찍고 보는 거다.
개들은 역시나 자유롭다.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기 바쁘다.
무리를 이탈한 검정개
나를 한참이나 본다.
트램을 타는 곳이다.
트램을 타고 이제 역으로 이동한다.
비둘기도 찍는다.
날라가버렸다.
눈 무더기를 찍는다.
트램을 타고 중앙역으로 이동했다.
앉아서 갈 곳은 없었다.
하지만 트램이 강 위를 지나갈 때
뒷 칸에 서서 동영상을 찍는 게 참 잘 나왔다.
구경도 실컷 했고
추운데 갈 곳도 없어서
역 안에서 5시간 정도를 보내기로 했다.
역 안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일은 쉽지 않다.
의자에 기대어 잠도 자다가
역 1층, 2층 구석구석 다 다녀보고
들락날락 몸부림을 쳤다.
역 안에서 배고픔을 달래줄 샌드위치를 하나 샀다.
맛이 좀 없었다.
상추가 너무 늘어졌었다.
갑자기 슬펐다.
내 인생에 최고의 현타가 온 것이다.
나의 인내심도 이제 한계에 달하는 듯 하다.
즐거움도 기쁨도 사라지고
회의감과 좌절 그리고 고통 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을 쉽게 조절할 수 없었다.
울먹이다가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다.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긍정적인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
사고 싶은 게 많았지만
돈을 아껴야한다는 마음이 컸다.
(물론 마지막 날에는 열 받아서 쓸어담아 왔지만)
이제 열차 탑승시간이 더욱 가까워졌다.
문득,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찍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래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자.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기록하자.
그러곤 마음이 편안해졌다.
5시간 째 기다리는 99번 열차는
블라디보트스톡에서부터 모스크바까지 운영하는 열차다.
10시17분~10시52분까지 꽤 오랜시간 이르쿠츠크역에서 머문다.
드디어 탑승한다.
역 안에 있으면서 나는 참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다.
TV에서나 보던 동계스포츠 팀처럼
완전무장한 가족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기도 하고
멀리서 온 사람을 역까지 마중나와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한다.
내려가는 길은
조금 삭막하다.
하지만 이런 러시아스러움도 이젠 익숙하다.
또 다시 열차를 탄다.
쉬지 않고 7일 넘게 열차를 타고가면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중간쯤인 이르쿠츠크에 잠시 내려서
옛 러시아의 도시를 구경하는 것도
괜찮은 코스다.
3일 준비하고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하기 - 15
다시 열차를 탑승한다. 이르쿠츠크는 처음 만난 날 따뜻하게 맞이해주었고 여길 떠날 때까지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은 달콤하다. 북적거리는 시장에서 들리는 러시아어
moon-times.tistory.com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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