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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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준비하고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하기 - 29
색감과 구도가 미친듯이 아름다울 때. 미친듯한 아름다움을 볼 때. 시각이 뇌로 보내는 엄청난 신호와 자극. 한편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몸은 온 몸이 전율에 뒤 덮이고 나는 엄청난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하늘을 살면서 본적이 없다. 하늘은 파란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늘은 파란색만 있지 않았다. 봄에 피는 라일락이 저녁 가로등 불 빛에 비칠 때 길쭉하게 뻗은 가로등과 보라색 꽃을 비추는 불 빛 나는 귀에 음악을 꼽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소리가 주는 선물까지 이렇게 황홀한 풍경에 덧 입히고 싶다. 나는 또 사진을 누군가에 부탁하게 된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하늘은 변한다. 지금도 변하고 있다. 어둠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빛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나는 이곳에 완전 흠뻑 빠져있다. 누구든 이곳..
2021.04.03 -
3일 준비하고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하기 - 25
여행을 하다 보면 알게된다. 생긴 모습, 구사하는 언어, 먹는 음식이 조금 다를 뿐 사는 것은 어딜가든 참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고 자기 전까지 일을 하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놀러다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 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지구촌이 서로 고립무원의 속에서 이제 벗어난 지 약 30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선한 마음을 가질 때도 있고, 악한 마음을 가질 때도 있다. 좋은 것을 구경하고 싶을 때도 있고, 힘들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사람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와 정치 보다 더 큰 범주인 가 보다. 언어는 다르지만 생각은 비슷하다. 문화는 다르지만 가치관은 비슷하다. 참 신기하다. 이러한 공통점으로 우리는 여행을 참 편하게 할 수 있다. 배가 고..
2021.03.14 -
3일 준비하고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하기 - 17
횡단의 끝, 모스크바 역에 서는 기분은 어떨까. 장시간 기차 안에서 섰다가, 앉았다가, 누웠다가를 반복한다. 객실 밖 사람들은 오래토록 앉아있기 힘든 사람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신선한 바람이 필요한 사람들이 나와있다. 나 역시 객실이 답답할 때 자주 바깥에 나와 서 있다가 다시 들어갔다. 객실 안에 러시아말을 할 줄 모르는 동양인이 나 뿐이있기 때문에 물론 나는 여러사람들의 관심에 표적이 되기도 했다. 나무위키에서 읽어본 러시아사람들의 국민성 중에서 내가 특히 기억에 남고 이건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 누구나 쉽게 친해지고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순화하여 표현한 말이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대화를 즐긴다. 객실안에서 가족처럼 이야기하고 ..
2021.02.28 -
3일 준비하고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하기 - 16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여행자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푼다. 열차는 급할 것 없이 달리며 각 도시에서 온 탑승객들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준다. 나는 때를 맞춰 먹는 것만 준비하면 된다. 침대가 식탁이 되고, 의자가 된다. 이부자리는 잠시 접어두었다가 또 펼쳐 덮는다. 창 밖의 풍경은 영화가 되고 열차가 달리는 소리는 자장가가 된다. 이보다 더 이상의 만족은 없기에 돈을 쓸 일도 이곳에서는 거의 없다. 아침이 밝아온다. 도시의 가로등 불빛은 하나씩 꺼져간다. 동이 트고 따뜻한 물에 카누를 태운다. 햇볕이 들기 전 나무는 잠이 덜깬채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오이 두 조각과 소시지를 넣은 라면을 먹는다. 아침이다. 단백질, 탄수화물, 비타민 이것만 신경쓰면 된다. 푸른 초원은 눈 아래 숨어있다. 배고픔에 어슬렁대는 늑..
2021.02.28 -
3일 준비하고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하기 - 15
다시 열차를 탑승한다.이르쿠츠크는 처음 만난 날 따뜻하게 맞이했고여길 떠날 때까지 포근하게 감싸주었다.사람들은 친절하고, 음식은 달콤하다.북적거리는 시장에서 들리는 러시아어는 향기를 불어일켜 나를 그곳으로 다시 이끈다. 열차 안에서는 뚝딱하면하루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사라진다.피곤했는지 어제 밤 저녁은 푹 잘 수 있었다. 검은 숲과 하얀 눈그 속에 살아갈 동물들을 상상한다. 좌석에 매트리스를 깐다.누워서 잘 때 조금 좁을 수도 있지만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열차 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내리고 또 올라탄다.내 앞 좌석에도 사람들이 자주 바뀐다. 이번 모스크바까지는 4인석(1층, 2층 각 1명씩 좌석이 서로 마주보고 가는 형태)이다. 함께 탄 50대 중후반의 아저씨는 나랑 모스크바까지 동행한다.가는 동안 서로 ..
2021.02.27 -
3일 준비하고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하기 - 14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무엇이 나의 트라우마였는지 잊은채 바쁘게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꿈 같은 면허를 따고나서 나는 냉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상처를 입었다. '공부만 하면 돼'에서 '이제는 먹고 살아야해'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마주한 세상은 낯설고 심지어 나를 속였다는 생각에 배신감도 느꼈다. 창창하게 펼져진 미래는 어디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정말로 감사했고 한편으로 죄송스러웠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은 날 더욱 힘들게 했다. 러시아 여행은 숨을 좀 쉬고 싶어서 떠났다. 다행히 춥고 얼어붙은 이곳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이르쿠츠크의 병원이다.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2021.02.27